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오는 왕의 공식 명칭이다. 이장에서는 광개토왕의 업적과 치적을 통해 고구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태왕임을 살펴보게 됨으로써 고구려가 중국의 부속국이거나 속국이 아닌 진정한 독립국가로서 중국과 대등한 입장 더 나
광개토대왕공적기념호우 (廣開土大王功績紀念壺杅)다.
그릇이다. 호우명 그릇 사진의 아래에는 ‘당시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보여준다’고 적혀 있었다. 호우명 그릇과 관련된 신라와 고구려에 대한 관계에 대한 설명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호우명 그릇을 둘러싸고 있는 신라와 고구려의
국강상왕이라고 하였음으로(『삼국사기』) ‘국강상’은 ‘국원(國原)’이라는 지명임을 알 수 있다.
3.시호(諡號)와 장지명(葬地名) 그리고 수묘인...
광개토왕뿐만 아니라 그보다 이전에 재위한 왕들의 시호에도 장지명이 호의 첫머리에 나온다는 점을 볼 때, 당시 고구려 왕실(王室)에서 묘역(墓
1.광개토대왕은 누구인가?
재위기간에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므로 영락대왕이라 일컬어졌으며, 사후의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본명은 담덕(談德)인데, 중국측 기록에는 안(安)으로 전한다. 고국양왕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뜻이 고
대왕 18년(실성왕 7년),신라는 대마도를 정벌하려다 중지하였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고구려군이 신라 영내에 주둔해 있을 가능성으로 보아 공조체제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이렇듯 광개토대왕은 전통적 육지질서를 기반으로 새롭게 성장하는 해양질 서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동아지중해 내부의 각
광개토태왕의 영토확장
‘
‘대왕’이 아니라 ‘태왕’이 맞다!
태왕: 당시 동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천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
일본과 중국: 호태왕(好太王)‘
한국과 일본: 광개토왕(廣開土王)
♠광개토태왕비문 :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 태왕릉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인들은 호태왕이 누구인지 모르고, 중국인들은 광개토왕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정확한 표현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광개토태왕비문에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
광개토대왕릉비 (廣開土大王碑)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陵碑)이다. 비신(碑身) 높이 5.34m. 각 면 너비 1.5m.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광개토왕의 시호(諡號)를 줄여서 호태왕비라고도 한다.
414년(장